[스크랩] 지금 글을 쓰려고 하십니까? 읽어보세요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당신이 보내 주신 편지는 며칠 전에야 받아보았습니다.
편지의 내용에 담겨 있는 커다란 친절에 뭐라 감사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나는 당신의 시 안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나는 글에 어떤 비평적인 견해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비평을 통해서 예술작품에 다가서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비평을 가하면 다소의 오해가 생기게 마련이지요.
모든 사물은 우리가 믿고 싶어하는 것 이상으로 이해할 수 도,
말로 표현할 수도 없습니다.
모든 사건들은 대부분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영역 안에서 발생하며,
무엇보다도 예술작품은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무릇 예술작품이란 우리의 목숨과 달리 영원한 것입니다.
나는 당신에게 이 한가지만은 꼭 말하고 싶군요.
당신의 시에는 은밀하게 숨어 있는 개성적인 싹은 있지만,
독자적인 양식은 없는 것 같습니다.
특히 마지막의 <나의 영혼 속에서>라는 시에는 그 점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시에는 언어와 운율로 독자적인 무언가가 나타나고 있으며,
<레오파르디에게 부치는 헌시>라는 시 속에도
그 위대하고 고독했던 분과의 친근감이 나타나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런데도 그 시들 자체가 독자적이지 못합니다.
<나의 영혼 속에서>나 <레오파르디에게 바치는 헌시>도 그 점에서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렇지만 동봉해 주신 편지는 당신의 시를 읽으면서 느낀 막연함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지금 당신은 내게 자신의 시가 어떠냐고 묻고 있습니다.
물론 다른 사람에게도 물어보았겠지요.
또 잡지사에 보내거나 당신의 작품을 되돌려 주면 당연히 불안감도 느꼈겠지요.
내게 충고를 해도 좋다고 했기 때문에 감히 말하는데.
앞으로 그런 일은 되도록 삼가세요. 당신은 자신의 내면이 아닌 바깥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그러지 마세요.
어느 누구도 당신에게 충고를 해주거나 도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제 생각엔 단 한 가지 방법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자기 자신 속으로 한번 파고들어가 보세요.
그럼으로써 당신에게 자꾸 글을 쓰라고 명령을 내리는 그 근거를 캐보세요.
그런 다음 쓰고 싶은 욕구가 당신의 가슴 깊숙한 곳으로부터 뿌리가 뻗어 나오고 있는지
또 쓰는 일을 그만두기 보다는 차라리 죽음을 택할 수 있는지
본인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그리고 조용한 밤중에 자신의 정말 글을 쓰지 않으면 안 되는가를 스스로 확인해 보십시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울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만일 글을 쓰지 않으면 차라리 죽을 수 밖에 없다고
그 진지한 의문에 대한 명확한 답이 내려진다면,
주저 없이 당신의 생애를 그 필연에 의지해서 만들어 가십시요.
당신의 일상에서 비록 쓸모없는 순간이라 하더라도,
그 절실한 충동에 대한 증거가 되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자연을 가까이 하십시오.
그런 다음에 보고 겪고 사랑하고 그리고 잃게 될 것을 모방만 하지 말고
직접 표현해 보세요.
가능하면 사랑의 시는 쓰지 않도록 노력하십시요.
그리고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함을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 것들이야말로 가장 힘든 부분입니다.
왜냐면 훌륭한 전통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것들이 허다한 지금
독자적인 것을 표현하려면 무엇보다 힘차고 성숙한 역량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자주 선택하는 일반적인 주제는 피하는 것이 좋으며
자신의 평범한 생활에서 얻을 수 있는 주제를 택하십시오.
당신의 슬픔과 열망 그리고 아름다움에 대해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나 믿음을 묘사하세요.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주변의 사물들이나 당신 꿈의 영상이나 추억을 적극 활용해 보십시오.
당신의 생활이 비록 빈곤해 보일지라도
그것을 탓하는 대신 차라리 평범한 생활에서
풍요로움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자신을 탓하세요.
창조하는 사람에게 결코 가난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그냥 지나쳐버려도 좋을 진약한 장소란 없기 때문입니다.
비록 당신이 감옥에 갇혀 바깥세상을 보지 못하고
소리조차 들을 수 없다 하더라도
당신에게는 여전히 어린 시절의 그 소중한 추억의 보물창고가 있지 않습니까?
그것을 관심을 기울여 보십시오.
지나가버린 아득한 과거의 사그라든 감정을 다시 한 번 떠올려보세요.
그러면 당신의 개성은 더욱 굳어지고 고독은 넓어져 어둠의 공간이 형성될 것입니다.
주변의 시끄러운 소음도 사그라지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변모된 내명으로부터,
또 가라앉은 자기 세계로부터 진정한 시가 나온다면,
지금처럼 그 시가 어떤지 누군가에게 물어볼 생각은 절대로 하지않을 것입니다.
또한 잡지사에 작품을 보내 관심을 갖도록 애쓰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당신은 오로지 자신의 작품 속에서 보물처럼 소중하고
자연스런 한 조각 생명의 소리를 듣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내부로부터의 필요성에 의해 만들어진 예술작품은 매우 훌륭한 것입니다.
또한 시가 어디에서 나왔는지에 따라 그 평가도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정말이지 다른 판단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내가 당신에게 해줄 수 있는 충고는 이것이 전부입니다.
자신에게 파고들어 당신 생명의 그 깊은 근원을 느끼도록 하십시오.
그 근원으로부터 창작을 해야 할까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그 대답이 어떻든 간에 그대로 받아들이세요.
아마도 당신이 예술가의 운명을 타고 났다는 진실이 밝혀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 운명을 담담하게 받아들인 다음,
외부로부터 그 어떤 보답도 염두에 두지 말고 무겁고 힘든 짐을 기꺼이 지고 가세요.
창조하는 사람은 자신이 하나의 세계가 되어야 하며,
모든 것을 자기 자신 속에서나 그 자신과 하나가 된 자연 속에서 찾는 것이 바람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의 고독 속으로 파고든 다음에는 시인이 되겠다는 꿈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시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쓰지 않고도 살 수 있음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요.
하지만 자신의 내면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결코 헛된 일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당신의 생활이 어떠하든 거기서부터 독창성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길이 훌륭하고 풍요로우며 넓은 길이 되길 바라마지 않습니다.
이제 내가 할 말은 다한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당신에게 충고 한마디 하겠습니다.
부디 일관되고 진지하게 자신 안에서 성장과 발전을 이루어 나가세요.
가장 조용한 시간에 당신의 마음 깊은 느낌을 통해서만 답을 구할 수 있는
의문에 대해 절대로 외부로부터 대답이 오길 기대하지 마세요.
그것보다 당신의 발전에 방해되는 일은 없으니까요.
당신의 편지를 읽던 중에 호라체크 교수님의 이름을 보게 되어 무척이나 기뻤습니다.
수 많은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도 그분에 대한 변치않는 존경과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 나의 마음을 그분께 꼭 전해주세요.
그분이 아직까지 나를 기어하고 있다니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나를 믿고 보내준 당신의 시들을 다시 돌려드리겠습니다.
나를 믿어준 그 마음과 진심에 대해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나도 낯선 사람을 믿어준 것에 대해 정성껏 보답하려고
나름대로 노력했다는 사실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변함없는 관심을 가지고
- 라이너 마리아 릴케
Thomas Mooer ㅡ the Last Rose of Summer
Andre Riu Orchest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