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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눈 (기형도시인)퍼온시, 글 2010. 1. 15. 12:34
밤 눈
기형도
네 속을 열면 몇 번이나 얼었다 녹으면서 바람이 불 때마다
또 다른 몸짓으로 자리를 바꾸던 은실들이 엉켜 울고 있어.
땅에는 얼음 속에서 썩은 가지들이 실눈을 뜨고 엎드려 있었어.
아무에게도 줄 수 없는 빛을 한 점씩 하늘 낮게 박으면서
너는 무슨 색깔로 또 다른 사랑을 꿈꾸었을까.
아무도 너의 영혼에 옷을 입히지 않던 사납고 고요한 밤,
얼어붙은 대지에는 무엇이 남아
너의 춤을 자꾸만 허공으로 띄우고 있었을까.
하늘에는 온통 네가 지난 자리마다 바람이 불고 있다.
아아, 사시나무 그림자 가득찬 세상,
그 끝에 첫발을 디디고 죽음도 다가서지 못하는 온도로
또 다른 하늘을 너는 돌고 있어. 네속을 열면.
*기형도 시인은 연세대 정외과 졸업하고 중앙일보 에 근무했다
8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고 89년에 타계했다
그의 작품들은 독창적이며 강한 개성의 시들이 많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된 "잎속에 검은잎"시집에 실린
작품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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