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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다 피차 눈에 띄지 않았으면 풀잎 스치는 바람소리 내며 잿빛 굵은 비늘로 날을 세우고 기세등등하게 나를 쏘아 보지 않았을 텐데 습한 골짜기 한기 서린 안개 속에서 너도 헤메고 나도 헤매다 찰나의 인연으로 마추쳤다 분홍색 솔나리, 진보라 물봉선, 주황색 동자꽃, 노란원추리꽃,..
개망초 꽃 들길에 하얀 수다로 떠들썩 하다 바람따라 떠도는 하찮은 소문 저들의 이야기 꺼리다 수런수런 거리다 한낮 땡볕에 자지러진다 그곁을 지나던 여치 깜짝 놀라 땅으로 곤두박질 친다 ( 2011년6월30일 창작) 오정문학 19집에 실린 시
하얀운동화 구월 맑을때 송편 솔잎 따러 산에 오른다 금방 돋는 새순 찿아 숲속 깊숙이 들다 하늘로 치솟은 실한 소나무 곁가지 서늘한 바람에 날리는 무명천 그 아래 풀섶속 하얀운동화 갈래길 없는 외길로 따라와서 하얀 걸음걸이 초록발자욱만 남은 그 넋을 바라본다 2011년 5월 23..
수술 장미꽃잎 같이 부드러운 살결이라 했네 누가 알았을까 메스로 쫙 갈라 펼쳐 놓은 부끄러운 속내 치욕의 종양덩어리들 잘라내고 다시 덮어 바늘로 이불 꿰메듯 시침질했네 비단살결 뒤에 흉측한 문신 지워지지 않는 뱀같은 허물 새살이 돋는다고? 오정문학 19집에 실린 시
대추나무 한그루 작은잎새 햇빛에 닦아 놓고 바람의 숨결따라 조용한 춤사위 한뼘의 땅에 뿌리 내리고 날숨조차 허락치 않는 어둔공간 콘크리트 절벽들 비바람보다 블도저의 굉음에 스러진 동료의 죽음보다 혼자와의 사투가 더 무서웠다 아스팔트 밑에 숨어버린 꽃동네 산8번지에 유일..
일회용 티백 녹차에 펄펄 끓는 내마음을 붓는다 놓지 못하는 떨리는 손길로 길게 메달려 내안에 담긴 너를 오월의 풀빛으로 흔들어 깨운다. 김 서린 유리창 너머 나뭇가지가 무심히 내려앉은 순백의 무게를 견디다 못해 툭툭 제 몸을 털어 내고 이 겨울에 식은 녹차맛이 진해져 떫은맛이 날지라도 깃털만치 가벼운 마음이고파서 한모금 입새를 마신다. 1월11일 니나가
꽃샘추위 초록이 앓는다 으실으실 몸살이 왔다 여린 손마디도 한축이 들어 덜덜 떤다 분홍빛 열꽃이 핀다 따스한 온기가 그립다 어느거리에서 서성이나 그리운 사람아 죽을만큼 아픈데 이제 문밖에 왔어도 토라져 외면 할텐데 초록이 저 혼자 끙끙 앓는다
겨울비 니나 겨울에 비가 옵니다 억세게 퍼붓지 않습니다 또르르 굴러 나무끝에 눈물처럼 그렁이는데 누런젖은 풀잎 사이로 간밤 내린눈이 불편한 앙금처럼 서걱이는데 닫힌 빗장 열고 얼었던 천지 다 녹아 내리라 합니다 보이지 않는 초록봄을 부르라 합니다 25430